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윈스턴 처칠/평가 (문단 편집) === 긍정론 === 처칠이 아닌 다른 사람이 [[영국 총리]]로 있었다면 역사가 변했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. 당시 독일은 무패행진중이었고 유럽내에서 친독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. 독일이 멍청하게 서부와 동부전선 모두를 무리하게 늘리지 않았거나, 일본이 독일과 손발을 잘 맞췄으면 영국은 유럽대륙에서 고립돼 손가락 빨 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무조건 항쟁 선포로 2차 대전의 판도를 그나마 쥐고는 있었다. 영국이 처칠만큼 강경한 인사를 수상에 임명할 수 있었을 지가 관건인데, 처칠정도의 강경한 인사가 아니라 유화적인 인물이었을 경우 독일과 협상하는 방법을 채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. 종합적으로 본다면 굳이 처칠이 아니라도 처칠같은 강경파가 수상이 된다면 비슷하거나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[* 그 대체할 인물이 처칠과 달리 군사적인 안목을 조금이라도 갖추고 있다거나.] 영국정계에 그런 인물은 없었다. 앞서 언급된 [[What if]]에서 체임벌린의 후계자로 처칠 대신에 핼리펙스가 총리가 되는 대체역사를 서술한 앤드루 로버츠가 대표적이다. 로버츠의 대체역사에서도 히틀러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. 하지만 처칠보다 온건파였던 핼리팩스가 [[됭케르크 철수작전]]을 벌이는 대신에 독일과 협상해서 발을 빼버림으로써 영국이 전쟁에서 빠지고, ~~북아프리카에서의 이탈리아의 삽질도 없다.~~ 대신 독소전이 보다 이른 시기에 본격화 된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(당시 영국에서 처칠을 대신해서 '''대독 강경파의 수장직'''을 담당할 만한 인물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). 끽해야 앤서니 이든 정도가 대체했을 것이다. 즉 '나치 독일로부터의 수성' 이라는 업적은 충분히 대체 가능한 업적이었지만 처칠이 있었기에 영국이 자랑스러운 저항의 역사를 갖게 된 것이라 보는 게 옳다.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윈스턴 처칠, version=1692)] [[분류:윈스턴 처칠]][[분류:인물에 대한 평가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